2009년 01월 31일
Campbell Soup Cans_단상

Campbell Soup Cans(이하 캠벨 수프 깡통) 를 통한 대중사회와 예술잠품의 관계를 논할 때에 문화의 생산을 지적하는 후기자본주의 비판과 더불어 “생산의 문화”를 논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는 문화가 생산되어 팔리는 문화의 생산 시대에는 후기 자본주의적 생산의 문화가 전지구적으로 유통된다. 앤디 워홀이 마릴린 몬로와 캠벨 수프 깡통을 실크 스크린 방식으로 대량 생산해 낸 것은 생산의 수량과 그의 마케팅의 상업성, 그리고 50년대 미국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문화의 생산’을 전세계에 선언한 것과 같았다.
하지만 캠벨 수프 깡통을 통해 고찰할 수 있는 것은 문화의 생산 뿐만이 아니라 생산의 문화이다. 공장(the Factory)으로 명명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일련의 젊은 예술가들을 ‘노동자’로 고용하여 미술작품을 생산해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즉 문화의 생산에 대한 비판의 전제는 미학적 가치를 위해 예술은 생산과 소비에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도 수반한다. ‘대중(문화)의 소비는 수동적이며 획일적이다’. 이것이 문화의 생산에 대한 비판이다. 처음 대중문화가 등장했을 때의 비판과 강내희의 포스트 모던한 문화생산에 대한 비판 및 경계는 그 연장에 속한다고 본다.
하지만 내가 캠벨 수프 깡통과 대중과의 관계에서 보고싶은 것은 캠벨 수프 깡통의 ‘생산의 문화’에 대한 메시지이다. 강내희는 대중들에 대한 초국적 자본의 지배를 소유 구조를 통해 설명하고 있지만 문화생산자와 대중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였나의 여부에 따라 단순히 지배/피지배(복종)의 관계를 맺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부각되고 있는 것은 문화 생산의 과정에 포함되어있는 수많은 사람들-문화자본가와 최종 소비자를 포함해-을 분석하는 것이다. 자본을 가진 사람에게 노동을 판매한다는 것은 2차 산업 노동자와 같지만 그 노동의 성격이 질적으로 다르고, 문화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관리기법이 제시되고 있다(조지마이클과 소니 레코드 사의 소송사태와 일본의 닌텐도, 구글의 사원 관리). 문화와 예술에 대한 정의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시대 이후 60년 동안 크게 변화했다. 대중사회와 예술작품의 관계를 논하는 작업도 문화의 생산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생산의 문화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에세이 예문으로 제시된 강내희의 글 링크를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올리는데 이렇게 보니 참 뜬금 없음.
# by | 2009/01/31 01:39 | not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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