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연구에 돈을 쓰는 이유는

엠바고 풀렸다.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우주 연구에 여러 학자들과 국가들이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에 대한 에세이.

1. 문제의 구체화

제시된 의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전제하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겠다. ‘돈이 될 것 같지 않은’이라는 수식어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의를 한다면 이 의문에서 가지는 의미는 ‘초과 이윤을 충분히 창출해내지 못하는’의 의미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우주 연구의 범위는 은하(와 별, 행성, 그리고 생명) 의 군집으로서의 우주 구조의 매커니즘과 그 생성의 원리를 밝히는 우주연구일 것이다. ‘여러 학자들과 국가들이 매달리는 이유’라는 부분에서 국가 사회적 단위에서 많은 비용과 인력이 투입되고 있다는 사실이 전제되어있다. 질문을 구체화 해본다: “충분히 그 자체로서 초과 이윤을 창출해 내지 못하는 우주 연구에 왜 국가 사회적 단위의 공적인 비용이 투입되며 또 이에 많은 과학자와 행정가들이 우주 연구의 지속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가?” 이 문제는 우주 연구를 비롯한 과학 연구 자체가 가지는 특성의 차원과 과학 연구가 사회와 가지는 관계의 차원 두 수준에서 논의 되어야 할 것이다. 진리를 다루는 과학으로서의 우주 연구의 가치, 그리고 산업으로서 사회에서 가지는 우주 연구의 가치 차원에서 논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문제가 가지고 있는 전제에 대해 짧게나마 검토를 할 필요성이 있다. 우주 연구는 충분한 초과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가?


2. 우리나라의 현황, 해외 선례

최근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대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는 항공우주연구원의 소형위성체(KSLV-1) 자력발사 등 한국의 우주개발에 대한 질의응답시간이 있었다. 우주항공산업의 예산에 사용에 대한 질타가 있었는데 입찰비리와 같은 행정분야의 문제를 제외하고도 막대한 투자를 받는 연구개발 사업으로서 연구에 실패가 없어야 한다는 질타를 받았다(우리나라는 연간 3000억 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으며 미국은 20조 원, 일본은 3조원 정도를 투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가 우주연구개발 사업에 3000 억 원을 투자할 필요가 있는가’ 혹은 ‘우주 연구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고 다른 분야(이 때 예로 들어지는 분야는 다양하다)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같은 막연한 대중들의 회의적 관점에서부터 우주연구는 실패 위험성이 높고(57년부터 1999년 8월까지 약 313회의 우주발사 실패) 투자 대비 자본 회수기간이 긴 연구개발산업이라는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관점이 우리 사회의 우주 연구에 대한 스펙트럼이다. 이러한 고민은 우주 연구의 역사가 우리보다 긴 다른 국가에서도, 또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있어왔다.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의 냉전시기에는 가난과 같은 사회적 문제가 만연해 있는데 우주 연구에 투자를 하는 것은 자원의 낭비라는 비난이 많았다. 우주 연구에 들어가는 비용을 기아나 교육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익의 당위성을 내세워 비판하는 여론이 있었다. (물론 내가 냉전으로 인한 과도한 군비경쟁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우주 연구를 통해 이루어진 업적이 전쟁 무기를 개발하는 데에 사용되었다는 시민사회의 비판도 따랐다. 이에 대해 당시 NASA 우주 비행센터의 폰 브라운은 앞으로 세상의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인공위성이 도구로서 필요할 것을 지적했다. 현명한 지적이자 예언이었지만 대중에게는 그리 어필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달 착륙 이후 NASA의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미국의 대중은 우주 연구가 자신에게 언제 어떻게 줄 지 모르는 혜택보다 자신이 언젠가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 쪽에 자신의 세금이 쓰이길 바랬고 정치인은 대중의 요구에 부합했다. 나는 인간이 합리적 존재라는 경제학자들의 전제는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합리성은 어디까지나 제한적 합리성이다. 선택의 결과가 함리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고려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개별적 수준의 합리성이 작동한다.


3. 과학의 속성

실패 위험이 높고, 투자 자본의 회수의 주기가 긴 특성을 가진 우주 연구에 공적 자원이 투자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 우주 연구에 투입되는 예산이 (대중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적은데도 불구하고 연구에 헌신하는 과학자들은 어떤 동기에서 그러한 행동을 하는가? 이를 발견으로서의 과학, 과학의 활용과 사회와의 관계의 측면에서 살펴보고 싶다.
위에서 언급했던 폰 브라운의 우주 연구 개발 투자에 대한 항변의 앞에는 우주 연구로부터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을 수 있다는 변호가 있었다. 과학의 기본적 속성은 새로운 발견 그 자체에 있다. 과학의 궁극적 목표는 자연 법칙에 대한 발견이다. 신학적 상상에서 철학적 통찰로, 근대 과학의 관찰과 실험 기법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법칙을 기술하는 것 자체가 과학자들의 목표였다. 우주 연구가 가지는 그 자체로서의 가치도 여기에 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발견하는 것이다.


4. 과학과 기술

관찰을 통한 발견으로 자연의 법칙을 정립하는 측면 이외에 기술로서의 과학으로서 가치를 가진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인공위성을 이용한 통신 및 방송산업이 21세기 우주산업에서 가장 큰 분야가 될 것이다. 인공위성의 이용과 인공위성과 우주환경 이용의 영역이 증대되고 DT다. 인공위성은 통신, 방송, 환경, 기상, 해양관측, 자원탐사, 안보, 평화유지에 확대됐다. 신소재와 의약품 개발에 무중력, 진공 등 우주정거장을 우주 공장으로 이용하는 산업이 시작되고 있다. 진공상태를 이용한 새로운 반도체의 개발 등 우주 연구의 응용은 소위 현대 자본주의 시장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일컬어지는 기술분야에 널리 응용되고 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국가 차원에서 한정된 자본을 바탕으로 한국의 연구 개발 시장 규모에서 가능하기 힘든 연구를 지원한다면 우주 연구에 지원하는 것이 낭비가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주 연구의 결과물이 어디에 사용되는지에 있어서 ‘안보’에 대한 논쟁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우주 연구의 결과물이 결국 군비경쟁과 전쟁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떤 기술이든 사용하기 나름이라는 답변을 하고 싶다. 이것은 과학자들만이 해야 할 고민이 아니라 모든 영역의 사람들이 인도주의의 차원에서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약도 많이 먹으면 신체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듯이 기술의 사용의 문제가 그 기반이 되는 과학 탐구의 영역에서 먼저 제기되는 것은 부당하다.


5. 정리

이 글을 통해, 나는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우주 연구’의 전제에 대해 의문을 던졌고 그에 대한 나의 의견을 발견과 진리탐구로서의 우주 연구, 그 연구의 기술로서의 사용 두 측면에서 우주 연구의 필요성과 현재 우주 연구에 대한 투자의 당위성을 찾았다. 우주 과학도 다른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마찬가지로 삶의 질을 증진시키고 산업 발전에 일조할 것이기 때문에 국가적인 투자가 필요하고 또 각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by 양몽구 | 2009/02/03 15:26 | not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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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ㅁㅁㅁㅁ at 2009/02/03 17:36
어차피 한국에서는 지금부터 우주과학에 돈 붓는다고

미국 유럽 일본 따라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블루오션을 찾는 게 답



뭐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하기 때문에

예산을 배정하긴 하지만

정부에서도 생색만 내는 거지

그쪽에 대해 의지를 갖을 이유는 없음
Commented by 양몽구 at 2009/02/03 18:37
갖을이 아니라 '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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